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 (문단 편집) === 아부 바크르 체제에 대한 승복과 우마르 지지 === 그러나 이런 분열은 아부 바크르의 칼리파 취임 반년 후 끝을 보게 되었다. 이는 무함마드의 사망을 계기로 아라비아 반도 각지에서 무함마드 이후의 사도는 자신들이라 주장하는 세력들이 들끓었기 때문이다('''[[릿다 전쟁]]'''). 그리고 이런 정세에 위기감을 느낀 양측은 상호 타협해 아부 바크르의 칼리파 직위를 인정하게 되며, 이후 곧장 아라비아 반도 내의 반란 움직임을 타도하는 군사 활동에 돌입했다. 얼마 후, 애초부터 나이가 많았던 아부 바크르가 칼리파 취임 2년 만에 사경을 해매게 되었다. 그러자 자신의 죽음으로 생겨날 혼란을 우려한 아부 바크르는 자신의 후계자로 [[우마르]]를 추천했다. 그러나 당시 '''오만함과 거만함, 사나움으로 악명이 높았던 우마르가 인자함과 자상함으로 유명한 아부 바크르의 후계자가 된다는 사실에''' 떨떠름해 하는 사람이 많았고, 그 때문에 아부 바크르의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우마르의 제2대 칼리파 즉위는 불확실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놀랍게도 다른 유력 후보였던 알리가 우마르의 칼리파 직위를 적극적으로 추천하면서 결정적으로 의견의 전환이 이루어지게 되었고, 이에 따라 우마르는 무사히 칼리파 직위에 오를 수 있었다. 이는 대단히 놀라운 일이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특별한 존재로 여겨지던 알리의 존재감을 생각했을 때, 의견을 조금만 틀거나 논란이 길어진다면 그를 후계자로 선정하자는 이야기가 나올 가능성이 대단히 높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알리의 경쟁상대인 우마르는 자상함으로 모두에게 사랑받던 아부 바크르와 달리 그간 보여준 오만함과 폭력성에 대해 못마땅해 하는 사람이 많았다. 따라서 버티기만 하면 차기 칼리파의 직위는 알리의 것이 될 가능성이 컸으나, 놀랍게도 알리는 우마르를 지지하며 스스로 차기 칼리파의 직위를 포기한 것이었다. 지금까지도 당시 알리의 진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강압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선택[* 주로 시아파에 의해 주장되는 의견이다. 이 경우 아부 바크르와 우마르의 뒷공작에 의해 알리는 어쩔 수 없이 우마르를 지지했고, 따라서 두 명은 시아파 입장에선 반역도당이다.]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대체로는 강직하고 이슬람에 대해 진심으로 열정을 바쳤던 알리가 자신이 칼리파 직위에 오를 경우 발생할지도 모를 충돌과 분열을 방지하기 위해 스스로 선택했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사실 정황을 둘러보자면 이런 의견은 높은 설득력을 가진다. 당장 반년 전까지도 이슬람 세력은 아부 바크르와 알리 간의 분열의 여파로 발생한 권력 공백을 틈탄 사이비 반란을 진압하느라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데 반년 만에 칼리파 선정으로 다시 분열이 발생할 경우, 이번에야말로 이슬람 세력이 완전히 몰락할 것이라는 우려를 할 법했다. 게다가 이 시기 [[동로마 제국]]은 아리비아 반도의 혼란을 틈타 세력을 확장하고자 군사적 팽창을 시도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알리는 자신의 세력을 억누르고 다른 유력 후보자를 지지함으로써 이슬람의 화합을 꾀할 수 있었고, 우마르는 알리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하는 데 충분한 공적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우마르는 당시 이슬람 내에서 진행되던 세속화를 끝까지 경계하던 인물이었다. 사상적으로도 사실 알리와 많이 비슷했던 셈.]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